"요새 워치게 된게 일 물어야 할 곳이 이렇게 많은겨?"

태안사람들이 애경사에 축의금이나 부의금 내는 것을 두고 "일 물다"라고 말한다. 같은 충청도라도 다른 지역에서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태안사람들만 사용하는 의사소통 용어다. 

어원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문헌으로 기록된 것도 없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없다. 사투리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오랜 세월동안 쓰고 있는 생활용어로서 의사소통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중학생 손자한테 "녀석아, 너도 크면 앞으로 일 물어야 할 곳도 많으니 덕을 많이 쌓아야 하느니라"라고 훈계하면 손자는 인터넷'네이버 형'에게 찾아가 검색어로 '일 물다' 를 입력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답이 없다.

대체 우리동네 어른들이 축의금 내는 일을 왜 "일 물다"라고 하는 것일까? 태안출신 담임선생님한테 여쭤봐도 그냥 어른들이 하는 소리라고만 둘러치고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담임선생님도 모르는 듯하다.

태안사람들이 '일 물어야 한다'라는 말은 축의금 등을 누군가한테 줘야 하는 행위인데, 몸으로 일을 하고 품을 파는 일과 연관성 있다.

농경사회에서 삶의 모든 행위는 '일'로 규정된다. 애경사를 서로가 챙겨주는 일은 품앗이 개념인데, 이는 오랜 농경사회의 단면에서 파생된 용어로 추정이 가능하다.

신세를 갚거나 빚을 갚는 것도 삶에 있어 중요한 '일'이라는 정서에서 나온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사회에서 일을 물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품앗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선거법에 정치인 또는 공직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들은 일을 물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품앗이 애경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타락시킨 사람들 때문에 정치인은 애경사에 일을 물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