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할아비 바위(촬영: 박재흥)

태안 꽃지해변의 상징인 할미바위 일부가 무너져내렸다는 소식은 그 모습을 아끼던 많은 국민에게 큰 안타까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바위를 영원불변의 상징으로 여긴다. 하지만 생물에게 생로병사가 있듯 바위 역시 자연의 거대한 순환 과정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번 붕괴를 특정 관리 주체의 관리부실이라 보고 그 주체에게 책임을 묻는것은 옳지 않다고 보인다. 그 붕괴의 원인은 오랜 세월 누적된 해풍과 염분, 파도의 침식, 그리고 바위틈을 파고든 생명의 힘까지, 수천 수만년 이어진 거대한 자연의 힘이 임계점에 도달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며, 우리 세대가 그 장구한 흐름을 직접 목도하고 있는 것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너진 바위를 보며 과거의 모습만을 그리워한 나머지 '인위적인 원형 복원'을 서둘러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욕심일 수 있다. 우리는 왜 그것이 부자연스러운지 구체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원형 복원'은 결코 '과거의 재현'이 될 수 없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본래의 암석이 아닌, 시멘트와 철골, 강력한 접착제와 같은 이질적인 재료의 개입을 뜻한다. 수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자연 암석의 결 위에 인공 재료를 덧씌우는 것이다.

설령 표면을 비슷한 암석으로 덧대어 가린다 해도, 그 접합부는 세월이 가면서 본래의 암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풍화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질적인 질감의 '땜질'자국은 더욱 도드라지게 되며, 이는 자연유산의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영구적인 흉터로 남을 것이다.

결국 '인위적 복원'은 할미바위를 살아 숨 쉬는 자연에서 과거의 박제된 형상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이다. 이과정은 수많은 시간 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던 할아비 바위의 진정한 가치를 더 크게 훼손하는 행위이며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의 이력을 지워버리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자연 파괴행위'가 될수있다.

지금의 모습 또한 할미바위가 품은 새로운 역사이자 자연의 기록이다. 따라서 우리가 택해야 할 '보존'은 인위적인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무너진 상태 그대로의 보존'이 되어야 한다.

이 변화된 모습 자체를 할미바위의 새로운 '원형(原型)'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무너진 상태로의 보존'이 '방치'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할은 자연유산의 가치를 존중하며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첫째, 긴급 안전 조치와 정밀 진단이 시급하다. 이미 붕괴가 시작된 만큼, 남아있는 암석의 안정성을 면밀히 평가하고 추가 붕괴 위험 지역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이는 그 자연을 찾는 국민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의무이다.

둘째, 관광 및 문화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무너진 할미바위'는 그 자체로 강력한 교육 자료이다. 왜 붕괴되었는지(풍화, 침식 등)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현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관람 동선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자연의 역동성을 배우는 현장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국가자연유산 명승 제69호인 할미바위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너진 바위를 보며 과거의 모습만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변화한 모습 그대로를 '새로운 원형'으로 받아들이고, 그 곁을 찾는 이들의 안전을 지키며, 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을 겸허히 기록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자연유산을 사랑하며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진정한 '보존'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촬영: 박재흥
촬영: 박재흥